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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르치는 사람

 

‘가르치다’ 의 사전적 의미는 ‘깨닫거나 익히게 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르친다는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 이해해보면 근본에 있어서는 내가 아는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배움의 나눔이야말로 가장 큰 기쁨이고 가장 큰 복덕이고 가장 큰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곧 자신이 배운 바를 주위에 나누고 이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배운 사람이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됩니다. 예로부터 배움이 깊은 사람은 성숙한 인격과 덕을 함께 쌓았고, 그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훌륭한 가르침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 에서 “지도받은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가질 것이요.” 라고 하였고, 좌산 상사는 ‘배움과 가르침의 도’에 대하여 “배우지 아니하면 지자(智者)가 될 수 없고 가르치지 아니하면 지도자(指導者)가 될 수 없다.

 나보다 부족한 곳에는 다가서서 가르쳐야 한다. 자기만 알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빚을 지음이다. 맑히고 깨우치고 바루어주는 가르침을 베풀어가야 한다. 옛 성인도 오직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을 뿐이라고 하셨다.” 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누군가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불평이나 비난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에 비해 ‘몰라서’ 계속 잘못을 하는 이에게 가르침을 주어 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잘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잘 가르쳐주려는 선의를 가지고 상대방을 대해도 상대가 내 본의를 몰라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가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할 때 자칫 자기감정에 끌려 가르치는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상대방이 가르침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 화를 내거나 다그칩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마음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잘 가르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잘 가르치려면 먼저 성의가 있어야 하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자비심이 있어야 합니다. 가르쳐준 것을 한 번에 바로 이해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는 것을 실천으로까지 옮기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배우는 사람이 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가르쳐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인내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의 훌륭한 선생님들을 뵈면 교수법이 좋기도 하지만 학생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특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기운은 통한다고 하지요. 마음에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치면 그 효과도 배가 됩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가르치는 법’ 으로 심교, 언교, 행교, 엄교 네 가지를 말합니다.
먼저, 심교(心敎)는 마음이 늘 진리에 합일되어 신앙과 수행을 철저히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따로 특별히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배우는 사람이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방법입니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심교입니다. 언교(言敎)는 말이나 글로 설명해서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행교(行敎)는 평소 생활 그대로가 가르침이 되는 방법입니다. 

솔선수범이라고 하지요. 평소 생활이 모범되고 법 있게 행동하면 그 사람의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배움을 얻기도 합니다. 

끝으로, 엄교(嚴敎)는 상대방이 철이 없어서 심교, 언교, 행교를 잘 받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를 때 그 마음을 경책하기 위해 엄하게 혼을 내거나 벌을 주는 것으로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엄교는 자주 쓸 법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유태인의 자녀교육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요. 본인이 스스로 잘못한 것을 자각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유태인들의 교육법이라고 합니다. 

유태인 부모들은 아이가 실수해도 절대 혼을 내지 않고 부모 자신도 지금까지 많은 실수를 해왔고 실수가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되고 귀중한 일임을 말해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진짜 실수임을 알려줍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오늘, 하나라도 무엇이든 잘 가르쳐주고 살았는가’ 생각해보고 내가 아는 것을 나누고 내가 가진 것을 활용하여 잘 가르치면서 세상의 발전을 위해서 내가 어떤 도움을 주고 살았는가를 자주 살핀다면 늘 배움과 가르침으로 성숙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성인교무
◎1992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졸업
◎1996~2007 미국, 원불교 맨하탄교당 교무
◎2007~2010 휴스턴 American College of Acupuncture &Oriental Medicine 한의학 공부
◎2011~2021 Upstate New York
원달마명상센터 교무, 한의사겸직
◎2022 1, 원불교 휴스턴교당 주임교무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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