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조니 김, 세 번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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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공식 유튜브채널 캡처
의사, 특수부대, 우주인—그의 눈부신 여정 뒤에 숨겨진 상처와 회복의 이야기
하버드 의대 졸업장,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경력, 그리고 이제는 우주를 날아오른 NASA 우주인.
올해 41세, LA 출신 한인 2세 조니 김(Johnny Kim)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쉬웠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말은 너무도 사실이다.
조니 김의 눈부신 여정은 말 못 할 고통과 끝없는 자기 단련의 시간 위에 세워졌다.
어린 시절, 총성이 울렸던 집
조니 김은 로스앤젤레스의 조용한 주택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 안은 조용하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의 가정폭력, 그리고 그 끝은 경찰의 총격으로 끝난 비극적인 하루였다.
그는 가족 앞에서 총을 든 아버지를 보았고, 그 기억은 평생 그의 가슴에 각인됐다.
하지만 조니는 그 트라우마를 '상처'가 아니라 '원동력'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와 동생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로 향했다. 이 선택이 그의 첫 번째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네이비실에서의 날들,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다
입대를 앞두고 발목을 다쳤을 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그 꿈을 접는다. 하지만 조니는 의무병으로 방향을 틀었고,
결국 네이비실 훈련을 통과하며 의무병과 저격수라는 이중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그는 이라크에 파병돼 100회 이상의 특수작전을 수행했고, 전우들을 살려낸 공로로 은성훈장과 동성훈장을 받았다.
총성 속에서 살아남은 그는 두 번째 결심을 한다.
“사람을 더 깊이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버드 의대, 그리고 공부와 육아의 병행
전역 후 조니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가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그의 하루는 수업, 운동, 아르바이트,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의 시간으로 가득했다.
“공부도, 아버지도, 전투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다르죠.”
주차위반 단속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던 그는
매일매일 자신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잠을 청했다.
우주로 향한 꿈, 그리고 ‘영감이 되는 사람’이 되다
하버드에서 만난 스콧 파라진스키 교수는 조니에게 새로운 길을 제안한다.
“넌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
한 번도 우주인을 꿈꿔 본 적 없던 그는, 그 말에 가슴이 뛰었다.
그는 NASA의 까다로운 선발과정을 거쳐 최종 승인이 났고,
2025년 4월 8일, 조니 김은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ISS(국제우주정거장)에 안착했다.
그는 이제 한인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되었고,
아시아계 청소년들 사이에서 “엄마들이 비교하는 전설의 인물”로 불릴 만큼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조니 김의 성공은 단순한 스펙의 나열이 아니다.
그는 극복의 아이콘이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고통을 이야기하며,
자신보다 더 나은 다음 세대를 위한 등불이 되길 자처한다.
“누구든 삶의 배경이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멈추게 해서는 안 돼요.”
그의 말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하다.
조니 김—그는 단지 영웅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단어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이름 하나로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을지도 모른다.
한편, 조니 김은 두 명의 러시아 우주인과 함께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약 8개월간 체류할 예정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다수의 과학 연구 및 실험 임무를 수행한 뒤, 오는 12월 9일 지구로 귀환할 계획이다.
조니 김이 탑승한 러시아 우주선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간의 협정에 따라 이뤄진 협력의 일환이다.
양 기관은 지난 2022년 7월 상호 협정을 체결, 자국 우주선을 통해 상대국 우주비행사를 ISS로 수송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는 우주정거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대체 수송 수단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조치로, 한쪽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인류의 우주 탐사 활동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국제 협력의 상징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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