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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다 이민자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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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캡처


프롤로그: 장미와 헌법 사이에서


그는 손에 헌법을 쥐고 있었고, 가슴에는 장미 한 송이를 품고 있었다.”


내가 어릴 적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조용했다.
말보다는 침묵 속에서, 명령보다는 질문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는 이따금 식탁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스틴, 너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니?”

그 질문 하나에,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배웠다.
그의 존재는 나에게 정답이 아니라, 사유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였다.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는 단지 한 나라의 총리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 가족의 뿌리였고, 캐나다의 방향을 바꾼 사상가였다.

이 글은 그의 아들로서, 그를 따르며 배운 시간의 기록이다.
아버지를 잃은 후에도 여전히 나는 그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다.
그가 말없이 걸었던 그 길 위에서, 나는 자주 혼잣말을 한다.


“아버지, 당신이 꿈꾸던 ‘정의로운 사회’, 지금 이곳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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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몬트리올의 소년


1919년 10월, 퀘벡의 몬트리올.
그날 태어난 한 소년은, 훗날 캐나다의 지도를 다시 그릴 남자였다.
피에르 엘리오트 트뤼도.

그는 유복한 프랑스계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늘 자신을 '특권 밖의 사람'으로 인식하려 노력했다.
유년기의 그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고, 책을 친구 삼아 자라났다.
한때는 사제가 되려 했고, 한때는 수도원에서 침묵의 삶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그를 끌어당겼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법.
구조에 의문을 던지는 용기.
그것은 사회정의라는 이름의 불씨였다.

그는 파리에서 철학을, 하버드에서 정치학을 배웠고,
영국에서 영미법을 공부하며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의 세계는 국경을 넘어 있었고, 사상은 시간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지성은 감정과 결합할 때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그가 정치에 입문하던 1965년, 이미 그는 '사유하는 시민'으로서 캐나다 정치에 신선한 파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1968년, 캐나다는 ‘정의로운 사회’를 외친 지도자를 맞이하게 된다.


2장 으로 이어짐.


밴쿠버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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