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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교육 이민 1세대에게 듣는 캘거리 한인 역사 이야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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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희: 여기 계신분들이 캘거리로 이민을 오신 것이 거의 50년, 반세기 전인데요. 반세기 전 캘거리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기억나는 모습들이 있으면 이야기 해 주세요.

 

최병기:내년 1월 4일이 내가 이민온지 50년이 됩니다. 내가 처음 왔을 때도 사우스랜드 드라이브가 있는데 그 밑으로는 집이 없었고, 말하자면 반대편은 집도 없고 ‘코랄 드라이브 인’ 야외 자동차 극장이 있었어요.

 

양재설: 당시는 야외 자동차 극장이 캘거리 북쪽에도 있었고 남쪽에도 있었습니다.

 

차광준: ‘코랄 드라이브 인’이 어디 있었냐 하면 17 에비뉴 사우스 에서 37스트리트 웨스트쪽으로 조금 지나가면 오른 쪽에 있었어요.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 데리고 가면 영화 3편, 4편을 보곤 했죠. 저녁에 가면 먼동이 틀 때까지 영화를 봤지요. 내가 이민을 올 때 캘거리 전체인구가 22만이라고 했는데 공항에는 현재와 같은 건물이 없었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한 참 걸어서 가건물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다운타운 또한 당시 가장 높았던 건물이 인터내셔널 호텔이었어요. 물론 캘거리 타워가 있었는데 그 때는 ‘허스키 타워’라고 했어요. 오일회사인 ‘허스키’에서 지은 것인데 캘거리 시에 헌납을 한 것입니다. 타워를 제외하고 건물중에는 인터내셔널 호텔이 가장 높았어요

 

조광수: 제일 높았다면 몇 층 정도됐나요?

 

차광준: 20층 정도? 아직도 4 에비뉴 2 스트리트에 있습니다.

 

라병학: 다운타운에서 가장 큰 호텔은 ‘캘거리 인’이었어요.

 

최병기: 당시 가장 고급 호텔은 팔레스 호텔이었지요. 그 호텔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클래식한 호텔이니까..

 

조광수: 그 때도 세실 호텔이 있었나요?

 

차광준: 있었지요. 세실 호텔은 일종의 주막이라고 할까… 잡다한 호텔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최병기: 내 기억에는 아파트 건물이하나 꽤 높은 것이 있었는데.. 6 에비뉴, 4 애비뉴 사이에… 그런데 지금은 콘도나 아파트가 하도 많아져서..어떤 것이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박근희:당시 교민들의 생활도 궁금한데요. 주로 어떤 모임들을 가지셨나요?

 

차광준: 교민들의 레크레이션, 놀이의 변천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면.. 김창영 박사님 댁에 모여서 1센트 내기 ‘섯다’를 종종 했어요. 굉장히 즐겁게 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섯다를 하던 사람들은 구세대 사람들이 됐고 다음 세대 사람들, 친척 초청을 받아 오는 사람들은 포커를 많이 하더군요. 여름에는 낚시, 겨울에는 누구나 스키를 탔고, 그러다가 요즘은 거의 골프를 많이 치는 것 같아요.

 

조광수: 그때는 한인들이 많지 않아서 지금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친하게 지냈을 것 같아요?

 

양재설: 처음에는 혼자 이민을 왔다가 초청되어온 가족들이 있었는데 그럴때면 김창영 박사가 다 같이 마중을 나가자고 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인데도 공항에 마중을 갔어요. 그리고는 가족같이 지냈죠.

 

박근희: 그 때는 한인 마트도 없었을텐데 음식들은 어떻게 해 드셨어요?

 

최병기: 양배추로 김치를 담궈 먹곤했죠. ‘사또’라고 조그마한 일본 집이 있었는데 그 곳 할머니가 쌀을 팔았고, 나중에 배추를 조금씩 팔 때가 있어서 그것을 조금씩 사다가 김치를 담궈 먹었어요.

 

차광준: 쌀은 중국집에서도 살 수 있었는데 포대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사다가 먹었지요. 우리쌀과는 다른 알락미(安南米)지만 그래도 먹을 만 했어요. 그리고당시 레스브리지에 가면 일본 사람들이 하는 농장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수용소에 있다가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 돌아가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에요. 그 농장에서 배추를 구해다 먹곤 했습니다.

 

양재설: 집 문을 잠그고 다니는 일이 없었어요. 장을 보러 가면 그냥 나갔다 왔으니까요. 캘거리에 울타리가 높게 된 것이 인구가 많아지고 도둑이 생기면서 새로 짓는 집들의 울타리가 높아졌지요. 그 때는 울타리가 없거나 있어도 무릎까지 밖에 안 오는 울타리만 있었습니다. 지금같이 높은 울타리는 없었어요.

 

최병기: 1972년에 친구가 와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글쎄 친구 부인이 카트에 핸드백을 두고 온거에요. 핸드백에 카드랑 3,4천불의 현금이 들어 있었는데… 얼굴이 파래졌지요. 그래서 다시 마트에 갔어요. 서너시간 뒤에 갔는데 한 푼의 돈도 없어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내가 보네스 파크에 카메라를 놓고 온 적도 있었는데 다시 갔더니 그냥 거기 있더라고요. 도둑이 없었어요.

 

양재설: 뉴스에서 총을 쏴서 누굴 죽이고 그런 뉴스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캘거리에는…

 

라병학: 주일에는 술집과, 극장, 체육관, 대형 식품점 등이 문을 닫았으며 소형 상점과 주유소, 약국들만 문을 열었습니다. 주일 오전에 깨끗이 세차를 하고 움직이는 차들은 대체로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가는것 같았습니다. 시내도 굉장히 깨끗했고 휘발유는 1리터에 16센트 밖에 하지않았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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